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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토퍼 윌크(Christopher Wilk) | 런던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 가구•목공 컬렉션 담당 큐레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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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트라는 무엇인가? |
유럽의 디자인 공동체 내에서 비트라만큼 잘 알려지고 존경을 받고 있는 사무용 가구 제조사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런 표현이 마치 책의 머리말이나 광고 위주의 디자인 잡지에 나옴직한 수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비트라는 최고의 품격을 갖춘 디자인 제조회사입니다. 회사의 디자인 팀은 마리오 벨리니(Mario Bellini), 안토니오 시테리오(Antonio Citterio), 필립 스탁(Philippe Starck), 제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과 같이 현대의 내노라 할만한 유럽 디자인계의 거장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모태가 된 찰스, 레이 임즈(Charles and Ray Eames)의 클래식한 가구는 전후 가장 뛰어난 가구라는 찬사를 낳기도 했습니다. 디자인이라는 요소는 비트라가 가구를 판매하는 회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회사 운영과 정신적인 면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특이한 형태의 가구를 수집한데에서 그치지 않고 능동적인 프로그램을 갖추어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미술관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의 탄생 배경과 컬렉션의 성격을 간략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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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렉션과 미술관 |
비트라는 1934년 윌리 펠바움(Willi Fehlbaum)이 세운 스위스 상점 비품제조사로 출발했습니다. 1957년 사무용 가구 생산으로 기업을 확장했고, 미국의 허먼 밀러(Herman Miller)사의 인가를 받아 찰스와 레이 임즈와 조지 넬슨(George Nelson)이 디자인한 가구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1977년에 윌리 펠바움의 아들인 롤프 펠바움이 회사 경영을 인수하면서 장 프루베(Jean Prouve), 알바 알토(Alvar Aalto)를 포함한 클래식한 모던디자이너의 작품은 물론, 임즈 부부와 넬슨이 디자인한 초기 가구들을 수집했습니다. 1987년 롤프는 열정적인 수집가였던 알렉산더 폰 페게작(Alexander von Vegesack)을 만나 그로부터 대량의 1880-1945년대 클래식가구 디자인을 획득하면서 컬렉션을 상당한 규모로 키워나가게 되었습니다.
당초 롤프는 북미 건축가 프랑크 게리에게 의뢰한 공장의 바로 옆 건물에 수집품을 보관할 계획이었습니다. 공장은 비트라의 주요 건축 프로그램의 한 부분으로 독일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에 소재한 비트라 주요 제작부지의 구조물을 니콜라스 그림쇼, 안도 타다오, 에바 지릭나(Eva Jiricna), 자하 하디드, 알바로 시자(Alvaro Siza)등 세계적인 주요 건축가들에게 의뢰(혹자들은 '건축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게리의 컬렉션 건축은 당초 비즈니스 고객을 대상으로 열 계획이었지만, 수집품이 늘어나고 폰 페게작이 프리랜서 이사로 고용되면서 대중에게 개방하는 미술관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건축물은 소장 작품으로도 유명하지만, 독일 표현주의와 체코 입체주의로부터 영감을 얻어 복잡하면서도 동적인 건축을 디자인하는 프랭크 게리가 유럽에 지은 첫 번째 건축이라는 점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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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렉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
비트라 컬렉션은 1800점 이상의 가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대다수가 의자입니다. 가구는 대체로 1820년대부터 오늘날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것이지만 주로 1925년 이후부터 1970년대 이전 시기에 제작된 것입니다. 따라서 모더니즘 전통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그 이전의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비록 대량생산을 위해 디자인 된 가구 위주이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몇몇 조명 가구 컬렉션도 보유하고 있어 가구 컬렉션을 보완해 주기도 합니다.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은 1988년 레이 임즈(Ray Eames)의 사망 이후 문을 닫은 임즈 사무실에서 대량의 디자인 원형과 모형을 취득하면서 대규모의 임즈 가구 컬렉션을 보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 확보한 것은 규모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것이었고, 동시에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의 성격을 규명할만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임즈 가구에 대한 비트라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공적 기록과 문헌 자료를 통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모든 가구를 자료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임즈 컬렉션은 사진, 판매 카탈로그, 광고물과 더불어 약 250점의 가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임즈 컬렉션 외에도 비트라는 독일의 1920년대와 1930년대 철강 산업 관련 공문서들(특히 안톤 로렌즈; Anton Lorenz 총서), 그리고 이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의 가구 디자인, 해리 버토이아(Harry Bertoia)와 버너 팬턴(Verner Panton)의 작품에 대한 공식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폰 페게작 이사와 비트라 미술관은 20세기의 판매 카탈로그, 사진작업, 특허품과 현대 문학 작품 등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 규모와 역사적 가치 또한 대단한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치밀한 견본과 공문서 수집 활동은 미술관의 관심이 결과물로서의 작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탄생 과정까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아름답고 추상적인 미술관 건물 안에 수집품을 진열하고, '명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전시 타이틀을 붙이는 작업이 시대적 흐름에 뒤쳐지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좀 더 분석적이면서도 교훈성을 강조하는 전시경향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역사적 시각을 가진 접근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디자인이나 장식예술 미술관이 작품의 의미와 복잡한 위계를 놓고 신경전을 펼치는 동안 비트라 미술관은 실용주의적이고 작품 기반에 관심을 갖는 접근법을 우선시 해 왔습니다. 이와 같은 시각은 부분적으로는 수집활동 당시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활동 중인 디자이너들과의 긴밀한 접촉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한 가지 범주에 집중하는 컬렉션의 전문성은 곧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이 그 분야에서 세계의 어느 미술관보다 더욱 적극적이라는 점을 의미합니다. 수집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작용한 점과 함께 다른 부서와의 정보 공유에 얽매이지 않는 것도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는 대다수의 유럽 미술관들이 관료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과는 달리, 비트라 미술관은 소규모의 사설기관으로 관료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가구를 구입할 때 많은 비용이 들기도 하지만, 비트라가 작품에 지출하는 비용은 소위 미술품을 수집하는 미술관의 지출 금액에 비해 높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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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렉션에 내재된 철학 |
비트라 미술관의 컬렉션이 현대 가구 전체를 포괄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가구의 역사는 펩스너식(Pevsnerian, 1936 런던에서 출간된 니콜라스 펩스너; Nikolaus Pevsner의 영향력 있는 저서, "Pioneers of the Modern Movement"에서 도출) 역사연구 방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은 1920년대 정립된 '역사적 흐름과 무관한 이상주의적이고, 기능적이며 기하학적으로 순수한 모더니스트 양식'을 금세기의 진정한 양식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비록 현대인들은 이 방법이 일정 양식이 없고, 역사관도 없으며, 시류에 적절하게 영합한 형태에 불과하다고 하여 안티-스타일로 보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의 역사적 관점을 바탕으로 미술관 컬렉션을 통해 20세기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형식과 미래지향적 기술을 선보였던 슁켈(Schinkel), 쉐이커(Shaker)와 토넷(Thonet)의 기발한 작품이 한 세기를 대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컬렉션은 당대를 선도한 20세기 전환기의 비엔나, 1920-30년대의 독일과 프랑스, 1945년 이후 스칸디나비아, 이탈리아, 미국 등지의 건축가와 디자인을 선보입니다.
아르누보나 아르 데코 같은 지역 특유의 일상적인 가구들과 함께 범주 외의 가구와 1960년대의 수제가구의 부흥은 모더니스트 전통 아래서 그 가치를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구조적 틀 자체는 고품격의 스타일과 아방가르드 디자인으로 남아 있지만, 1970년대 이후 모더니즘은 작품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로버트 벤츄리(Robert Venturi)의 후기 모더니즘의 앤 여왕 의자(Postmodern Queen Anne Chair)는 컬렉션에 포함되지만, 1930년대 고전주의를 제창한 작품은 제외되었고, 같은 이유로 1990년대의 작품도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알렉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에또레 소사스(Ettore Sottsass)와 같이 장식, 색상과 아이러니 그리고 대중적 취향과 비이성이 유효함을 주장하며 모던 디자인의 순수와 단순한 구조에 정면으로 도전한 건축가의 작품이 컬렉션을 대표합니다. 따라서 같은 경로를 걸었지만 아이러니나 비이성적 의도가 없는 전통적인 개념의 장식 디자인 작품은 컬렉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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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컬렉션과 디자인 미술관 |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과 컬렉션은 다른 디자인 미술관이나 센터 혹은 기업의 컬렉션과 여러 가지 점에서 다릅니다. 많은 제조사가 자회사 제품의 컬렉션을 갖고 있는 것에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큰 규모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원본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는 회사가 많지 않고 제품에 대한 관련 서류를 보유하는 작업이 핵심사업과는 별개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을 볼 때,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은 차별성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회사의 경우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긴 하나 보존에 대한 비중이나 작품의 자료가 거의 없을뿐더러, 회사의 고위간부가 개인적인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작품을 함부로 취급하는 경향도 종종 봅니다. 그런 회사들은 컬렉션을 대중적인 관점에 올려놓기보다 진열실의 부속물 정도로 여기며 전시회나 무역 박람회에 대여하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기업 컬렉션의 중심에는 자사 제품의 판촉이라는 목적만이 있을 뿐, 그 외는 어느 다른 목적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의 컬렉션에 비트라 가구 샘플이 포함되어 있고, 비트라 미술관이 회사의 공장 부지에 자리 잡고 있는 점, 종종 소장품을 다른 전시회나 무역 박람회에 빌려주는 점은 사실이지만 일반적인 회사의 컬렉션과는 비교하지 못할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기업의 컬렉션에 비해 비트라는 자사의 제품 외의 가구를 더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이 마케팅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며, 제품과 예술작품, 사설기관을 통해 디자인의 가치가 높아진 1980년대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이 세워진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유사한 성격의 사설기관 중에는 런던의 디자인 미술관과 플로리다의 울프소니안(Wolfsonian[sic]) 재단, 그리고 미시간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도미노피자 컬렉션 등이 있습니다. 비트라와 마찬가지로 이 같은 성격의 기관 배경에는 디자인의 지속적인 가치 수호와 함께 수집활동에 열성을 가진 개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경기침체기 무렵부터 기관 중 하나가 문을 닫고, 다른 기관의 미래 역시 매우 불안정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문화 기관과 마찬가지로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의 미래 역시 관객 확보와 출판과 소품가구의 판매에서 오는 수입 관리, 비트라사의 보조금으로 운영예산을 조달하는 능력에 달려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디자인 미술관 혹은 센터들과 달리,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은 거의 전적으로 가구라는 주제에 집중하였고, 이런 이유로 의자 미술관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비트라 미술관은 가능하다 할지라도 디자인의 전부를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타의 기관과 달리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젊은 디자이너들을 가르치는 레지던트 프로그램(resident program)이나, 무역 박람회 참여를 미술관 운영 방침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점, 그리고 수집하는 작품의 디자이너들과 적극 접촉하여 미술관과 실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해온 점은 비트라 미술관만의 강점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현역 디자이너들과의 유대는 비트라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특성은 다시 한번 미술관이 비트라 가구 회사와 완전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회사가 갖는 이미지와 제품의 수준은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을 끌어들이게 마련입니다. 많은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비트라의 개념을 존중하고 근무 조건에 흡족해 합니다. 자신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회사에서 탁월한 디자인을 발휘할 수 있으며, 제조와 판매 그 이상의 분야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때 더 좋은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자인계의 시각에서 미술관이 회사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압박은 그 만큼 이 둘이 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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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과 마케팅 |
비트라의 수집활동이 회사의 전반적인 마케팅 전략과 무관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수한 발상입니다. 물론 컬렉션의 성격이 기업 정체성에 기여하도록 의도적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미술관의 독립적인 성격은 유지할 수 있지만, 미술관이 비트라 소유주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재확인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은 사실입니다. 주요 무역박람회의 전시장이나 안내소, 비트라 자체 전시에서 보여 지는 미술관의 의도는 매우 분명합니다. 전시를 통해 직접적인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비트라가 디자인에 충실한 생산 활동 조직이라는 점을 홍보하는 것이 그 목표입니다. 미술관의 기업적인 성격은 미술관의 명성에 누가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미술관의 의도라 할 수 있습니다.
모더니즘의 가치가 쇠퇴하고 훌륭한 디자인의 개념이 다수에 의해 기각되던 시대에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의 관념적인 지위를 묻는 것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비트라를 포함한 다른 가구 회사의 디자인이 그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지키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비트라 미술관은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회사의 경제적 활동을 수긍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비트라가 최근 작품을 수집하면서 모더니즘의 성격을 넘어서고 있지만, 수집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디자인의 도덕성, 독자성과 중요한 작품 영역으로서의 가구의 가치에 대한 모더니스트의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역 디자이너들이나 학계에서는 이와 같은 의견이 여전히 유효한지 반문할지 모르지만,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이 같은 가치를 신봉하는 거대 관객층을 찾아낸 것만은 분명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주요 관객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 개념을 중시하는 대중입니다. 다른 기관에 비해 비트라는 많은 수의 관객 동원에 성공하고 있으며, 회사와 미술관의 관계 역시 미술관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보다는 미술관 자체를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는 대중적 시각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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