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마우리츠하위스, 오란녀(Orange) 가문
이 전시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 '마우리츠의 집'이라는 뜻) 왕립미술관에서 소장한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회화 50점으로 구성된다. 이 미술관은 그 이름이 유래된 바,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영웅 빌럼 판 오란녀(Willem van Orange)의 조카이자 그의 직속후계자로 네덜란드 총독을 지낸 요한 마우리츠(Johan Maurits)가 건립했던 궁을 그대로 개조해 만든 곳이다. 1581년 스페인으로부터 네덜란드를 독립시켰고, 지금까지도 네덜란드의 왕가를 이루는 이 오란녀(Orange, '오렌지군단'의 오렌지색의 기원) 가문의 수집품은 17세기 유럽최강국으로 부상했던 네덜란드의 최고명성을 자랑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었고, 1820년 이 궁이 현재의 미술관형태로 개방된 이후에도 질적 우수성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이 미술관의 수집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마우리츠하위스에서 새로 구입되는 작품의 목록은 세계 유수한 미술잡지에 실릴 정도이다. 이 미술관은 수집품의 내용에 있어서도 매우 한정적이어서, 일부 16, 17세기 플랑드르 미술과 18세기 네덜란드의 작품을 포함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17세기 북부 네덜란드 작품으로 집중되어 있다.
II. 네덜란드의 황금기, 렘브란트의 시대
시공간적으로 '17세기의 네덜란드'는 모든 면에서 매우 독특했다. 네덜란드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의 간섭 없이 독립된 7개 연방공화국의 형태로 된 '국가'의 원형이 탄생하였고, 스페인, 이탈리아의 강력한 카톨릭 영향권에서 벗어나 칼뱅주의로 대표되는 신교가 일상적으로 유포되었으며, 동인도회사 소속의 선박이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하여 그 머나먼 항로를 따라 일본으로까지 항해해 와 무역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때로 운 나쁘게도 태풍을 만나면 낯선 땅 제주도에 불시착하는 '하멜'과 같은 인물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정치, 종교, 경제 영역의 독립된 힘과 자부심은 예술영역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당시 네덜란드는 그 시기 유럽지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예술품유통구조, 회화소재의 다변화와 전문화, 고유한 회화양식의 개발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100년이 채 못 되는 이 짧은 시기를 '네덜란드의 황금기'라고 부르는데 주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상 렘브란트는 엄청난 이 시대의 활력이 요구했던 천재의 유형에 들어맞았던 화가였던 것이다.
III. 전시출품작 소개
유럽역사, 나아가 인류역사의 한 장을 이루었던 '17세기 네덜란드'라는 독특한 시공간이 이번 전시를 통해 재연될 것이다. 본 전시에는 17세기 북부 네덜란드 미술을 대표하는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 풍속화, 역사화와 루벤스(Pieter Paul Rubens), 안톤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로 대표되는 플랑드르 작가의 작품 일부를 포함한 50점의 마우리츠하위스 소장품이 선보인다.

전문 장르에만 전념하기에도 급급했던 미술시장의 경쟁체제 속에서도 모든 장르에 통달했던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 세 점(<깃 달린 모자를 쓴 남자>(1637년경), <웃는 남자>(1629-30년경), <노인 습작>(1650년))이 전시되어, 인물의 특징을 잡아내는 그의 통찰력, 옷장식과 귀걸이의 반짝임을 표현하는 그의 재능에 감탄하게 된다. 렘브란트와 쌍벽을 이루는 플랑드르의 화가 루벤스는 <젊은 여인의 초상>(1620-30년경)을 통해 루벤스 특유의 풍만한 가슴, 불그레한 볼을 가진 미인의 전형을 만날 수 있게 한다. 태피스트리의 모본이 된 그의 또 다른 작품(<로마의 승리>(1662-3년경))은 역사화를 구성하는 그의 능력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더욱 주목할만한 점은 이 대가들의 기교에 결코 뒤지지 않는 수많은 화가들의 최고작이 이번 전시에 출품된다는 것이다(출품작가수 44명). 렘브란트의 제자였던 호퍼르트 플링크(Govert Flinck)의 <의자 옆의 아이>(1640년)는 지나치게 넓은 이마를 가진, 결코 예쁘지만은 않은 여자아이의 지극히 사실적인 초상화로, 플링크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데 손색이 없다. 농부화만을 전문으로 그린 프란스 할스의 제자, 아드리안 판 오스타더(Adriaen van Ostade)는 <여인숙의 농부들>(1662년)이라는 작품을 통해 피터 브뤼겔에서 기원하는 네덜란드 농부화 전통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또 스페인에서의 전시를 마치자마자 서울로 오게 되는 얀 스테인(Jan Steen)의 <아픈 소녀>(약 1663-65년)는 '의사의 진료로는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상사병에 걸린 처녀'라는 스테인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를 재현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고유한 특성을 여실없이 드러내는 장르인 정물화, 풍경화 부문은 더욱 풍성하다. 꽃그림을 네덜란드의 특산품으로 만들었던 화가 중의 하나인 발타사르 판 데어 아스트(Balthasar van der Ast)의 매력적인 꽃정물화, 인생무상을 주제로 한 피터 클라스(Pieter Claesz)의 해골그림, 네덜란드 풍경화의 대표작가 야콥 판 롸이스달(Jacob van Ruisdael)이 6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그린 겨울풍경화 등이 전시된다.

작품의 크기에 있어서도 다양하다. '렘브란트 제자 중 최고'라는 찬사를 들었고, 그림가격에 있어서는 그를 뛰어넘었다는 헤리트 다우(Gerrit Dou)의 채 20cm가 안 되는 작은 작품에서 루벤스의 동료화가로 동물화 분야에서는 제1인자였던 프란스 스네이더스(Frans Snijders)의 2m가 넘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작품들은 한때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던 네덜란드의 황금기 문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들여다보게 한다. 예를 들어 아침식탁만을 줄기차게 그렸던 빌럼 클라스 헤다(Willem Claesz Heda)의 정물화는 17세기 네덜란드 시민의 가정집에서 사용하던 유리잔, 식기, 즐겨먹던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를 생생하게 재현해준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식탁 아래로 떨어질 것 같고 화면 밖으로 나올 것 같은 레몬껍질의 사실적 묘사 뒤에는 '일시적이고, 곧 사라질 생명의 무상함'을 암시하는 알레고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이런 식의 작품은 '보는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기본적으로 칼뱅파를 신봉했던 네덜란드인들의 '도덕적 위안'이 되었던 것. 물론 이런 식의 결합을 긍정한다 하더라고, '사실'과 '상징' 중 무엇이 이 시대 네덜란드 화가의 우선적 관심이었는지를 놓고 벌어졌던 미술사가, 문화사가, 철학자들의 지리한 논쟁(롤랑 바르트까지도 참여했던)은 아직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IV. 17세기 네덜란드, 21세기 대한민국
17세기 네덜란드. 정치는 상당히 민주적이었고, 신교중심의 종교는 매우 신선했으며, 경제는 가장 선진적이어서 자본주의의 맹아를 싹틔웠다. 문화는 이 모든 기초 위에서 독창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는 예술작품은 이 모든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17세기 네덜란드의 이 예술품들은 '인간이 그릴 수 있는 가장 사실적이고 생생한 그림'이란 어떤 것인가를 말해준다는 점에서 네덜란드 한 국가의 역사물이기를 넘어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300년이 넘는 시간을 초월해 2003년 8월 15일 시청앞 덕수궁내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될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의 걸작들을 통해 인류문화 유산의 진수를 경험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출품작 50점에 대한 각각의 해제, 출품작가 44명에 대한 설명이 담긴 도록과 소책자가 판매될 계획이며,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작품설명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은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이 1653년 무역선 스페르베르(de Sperwer)을 타고 대만에서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제주도에 표류하였던 17세기 동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작품을 통해 당시의 네덜란드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기획되었다. 마치 17세기에 하멜이 표류 후 본국으로 귀국하여 『하멜 표류기』에 조선의 생활상을 서술하여 서구세계에 알렸듯이,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에 네덜란드의 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문화적 교류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한다.

17세기의 네덜란드는 해상무역으로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황금시대(Golden Age)"로서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빨리 시민문화가 정착하였고, 시민의 기호에 부응하는 다양한 쟝르의 회화가 번성하였다. 당시의 시민들은 종교적인 회화보다는 일상생활을 반영하는 정물화, 풍속화를 선호하였고, 상업적인 성공을 이룬 중산계급은 자신의 위상을 알리기 위한 초상화의 주문을 서둘렀으며, 종교적 · 역사적 주제를 다룬 회화 또한 그 당시의 풍경과 건축적 요소들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배경을 뒤로한 17세기에 군인으로 경력을 쌓은 마우리츠(Maurits)는 1737년 서인도회사의 지명으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에서 자원개척을 통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로마건축에 기초한 네덜란드 고전주의 스타일의 마우리츠하위스(마우리츠(Maurits)의 집(huis))를 건축하고, 회화와 수집한 진기한 물건들로 가득 채웠다. 18세기 초반에는 대사관저로 후반에는 군사학으로, 1807년 왕립도서관으로 사용되던 마우리츠하위스는 1922년 마침내 왕립미술관(Royal Cabinet of Paintings Mauritshuis)로 안착되어 최고의 17세기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에 소개되는 작품은 마우리츠하위스 왕실미술관의 소장품 중 17세기 회화의 쟝르의 세분화(역사화, 실내화, 정물화, 풍경화, 초상화)와 발전과정을 단계별로 감상 할 수 있는 50점이다. 대표적으로 렘브란트 판 레인의 자화상 "깃털 달린 모자를 쓴 남자", 피터 파울 루벤스의 역사화 "로마의 승리: 로마를 영광스럽게 하는 젊은 황제 콘스탄틴", 피터 드 호흐의 풍속화 "야외에서 담배 피는 남자와 술 마시는 여자", 얀 스테인의 "이 뽑는 사람"과 발타사르 판 데어 아스트의 정물화 "꽃이 있는 정물화" 등이 소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