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the Circle
Garett Marshall
역사를 통하여 보건데 기하학적 형태들은 실제적이고 상징적인 자산으로 중시되어 왔다. 이것들은 문화의 법칙과 개념, 그리고 신념을 증거하거나 구체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용적이고 공리적인 진보를 달성하려는 전세계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활용되어 왔다. 실로, 의식과 잠재의식의 양쪽에서 볼 때 자연에서 발견되고, 과학에서 다루어지고, 종교에서 성별(聖別)되고, 그리고 예술에서 표현되는 기하학적 형상들의 중요성은 우리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점은 특히 원의 경우 진리처럼 보여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둥근 지구, 우리가 발견한 바퀴, 우리가 발명한 해시계로부터 우리가 신봉하는 철학적, 종교적인 패러다임과 우리가 가꾸어온 미적 개념들에 이르기까지 원과 원을 넘어서는 우리의 전망이 편재되어 있다. 원은 통일, 협동, 연속, 평등, 완성, 결합과 같은 여러 가지 전형(Ideal)을 상징하는데 적용되어 왔다. 또한 원은 포함과 동등하게 배제의 의미를 가져왔다. 원은 종교나 세속적인 관심에 의해 영적이고 철학적 의미를 담거나 상징적, 의식적인 것으로 쓰여져 왔다. 우리의 삶이나 생각에 퍼져 있는 원은 손가락에 끼우는 결혼반지와 올림픽 깃발의 오색 오륜, 그리고 외교 협상에 쓰이는 둥근 테이블에서도 볼 수 있다.

예술의 구조, 구성, 내용에 있어 원의 중요도는 미술역사를 통하여 볼 때 여러 시대를 걸쳐 예술가와 장인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리고 창조적인 의도를 본능적, 직관적, 지적, 영적, 과학적, 또는 미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원을 그려왔다. 오래 전부터 이러한 행위는 종교적인 아이콘에서, 그리고 로마와 이슬람 건축의 아치와 돔에서 묘사된 성자들의 후광(Aura)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사례와 여러 다른 예들에서 원의 변형은 작업의 중심이 되거나 구조적으로 또는 미적으로 예술 작품 내에서 결합되어 왔다. 때때로 원은 완전하게 기하학적이며 때로는 형태적으로 좀더 유기적이거나 불완전하다. 이와 같은 정반대의 대칭과 비대칭 사이에는 무한한 가능성들이 열려 있다. 이번 전시에 참가하는 네 작가를 포함한 우리시대의 많은 예술가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전망과 스타일을 통해 원에 대한 탐구와 확장을 지속해오고 있다.

공통의 요소 또는 형태인 원을 역동적이고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네 조각가인 최인수(한국), 나이젤 홀(영국), 크리스챤 헤르덱(스위스), 폴 이젠라트(독일)를 한 공간에 모으는데 전시의 기본이 있다. 예술에 있어 원의 중요성을 과장하거나 고립시키는 것이 목적은 아니고 오늘날 창의 적인 표현에서 원의 이용과 그 표현됨의 보편성에 단순히 주목하는 것과 각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원의 사용이나 조망을 대비하고 비교하는데 있다. 이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기하학적 형태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작품에 의미 있는 요소로서 끌어들이고 있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천년기를 맞아 우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으며 우리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것과 동시에 더 큰 통합과 이해를 위한 필요성을 알고 있다. 원에 대한 보편성과 각자의 조망을 통하여 우리의 이해력을 증가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고, 현대 미술의 이해를 넓혀 줄 것이고, 우리의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삶에 기여하리라 믿어 마지 않는다.